도착의 즐거움 보단 과정의 즐거움 3탄
3일차 아침, 나는 방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터미널 21 근처에 있는 중국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짬뽕과 탕수육을 맛보았다.
그 음식은 정말로 훌륭했다.
식사를 마친 후, 마사지를 받고 호텔로 돌아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고, 우리는 야시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러나 야시장으로 향하는 길은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퇴근 시간에는 절대 택시를 타지 말라는 형의 충고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찌어찌 야시장에 도착하여, 아무거나 주워 먹으며 친구들과 인증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날은 소문으로만 듣던 666에 가기로 했지만, 사장님이 5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 포기하고 나와서 맥주나 한 잔씩 하고 자자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알아보겠다고 길바닥에 앉아 구글링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잔카'라는 곳을 찾아내어 다시 택시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도착한 곳은 너무 골목 안쪽이라 솔직히 겁이 났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니, 사우나를 하고 때를 밀고 마사지를 받는 그런 장소였다. 서로 마음에 드는 친구를 선택하고 옷을 벗고 사우나부터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마감 시간 때문에 한 단계 낮은 코스를 선택했기에 사우나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때밀이가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푸잉이 타월로 내 몸을 문질러 때를 밀어주었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시원하게 나오지는 않았고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마무리를 짓고 위층으로 올라가니, 간단한 마사지와 함께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에 1000이 추가되고, 붕가붕가에도 1000이 추가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둘 다 합쳐 1500에 승부를 걸기로 하고, 붕가붕가를 시작했다...
친구가 먼저 들어간 옆방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가 너무 웃겨서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동굴에서 살짝 올라오는 냄새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고 나와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미프를 돌려보던 중, 갑작스레 한 푸잉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나에게 호텔로 와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즉시 "얼마나?"라고 물었고, 그녀는 천바트만 달라고 답했다.
뜻밖의 기회라 생각한 나는 그녀를 초대했고, 세븐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 콘돔을 구입한 후 호텔 아래에서 기다렸다. 그때 택시 한 대가 들어오며 내부 불이 켜졌고, 거대한 형상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특수부대 출신인 나는 곧바로 위험을 감지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유 없이 앉아 있는 사람인 척 연기를 시작했다. 그 순간 손목시계에서 진동이 울렸고, 자연스럽게 눈을 최대한 아래로 내려 확인해 보니 "나 도착했어. 로비 앞이야"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머릿속에서는 전력으로 도망칠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이가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을 알고 있으니 기다리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숀리라는 이름을 가진, 머리가 긴 형이 다가와 팔짱을 끼며 "오빠"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진정으로 위험에 처했음을 느꼈다. 옆구리에 총을 겨눈 것도 아닌데, 그저 이끌려 가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잠시 기다리라며 지갑을 가져와 먹을 것을 사러 가자고 하고는 도망쳐 방으로 돌아왔다. 이불 속에 몸을 숨기고 울 것 같은 상태로 있는데, 라인 메시지가 왔다. 그는 내 ㄸ도 먹겠다고 하며 들여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간절히 그에게 그냥 가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과 실제 모습이 너무 달라서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계속 설명했지만,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고집했다. 그렇게 가지 않겠다는 그의 태도에 결국 나는 500밧을 주기로 합의하고 내려갔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가 따라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유리문 사이로 500밧을 건네주고 뒤돌아보지 않고 바로 도망쳤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두렵고 손발이 떨린다.
자, 이제 슬슬 마지막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다음 네 번째 편에서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밤이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더 힘들다... 형들이 많이 위로해 주었지만 아직은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