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획대로 0.1도 되지 않았던 1년만의 방타이 방콕편 - 05. 3일차 라오스 푸싸오
3인칭 시점으로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점점 단순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는 3일차 여행의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이른 아침,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일어난 그는 낙슥사 푸잉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빅씨 마트로 향했다.
빅씨 마트는 그에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여러 차례 방콕을 방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찾게 된 장소였다. 이번에도 한국으로 돌아갈 때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위해 진열대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동결건조 망고스틴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제품을 살펴보던 그는 중얼거렸다. 이 망고스틴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몇 봉지를 장바구니에 넣고, 눈에 띄는 과자 몇 가지도 추가했다.
사실 선물을 고르는 일은 종종 귀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쇼핑을 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때도 많았다. 특히 여행의 마지막 날, 어떤 물건들을 챙길지에 따라 하루의 기분과 추억도 색다르게 완성되곤 했다.
쇼핑이 끝난 후, 그는 예전에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던 이싼 요리 전문 식당으로 향했다. 빅씨 마트 근처에 있는 이 식당은 그가 재방문할 만큼 맛에 대한 신뢰를 쌓아둔 장소였다. 자리에 앉아 팟카파오무쌉과 새우 튀김 요리를 주문한 그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에 잠겼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매콤하고 고소한 돼지고기와 은은한 바질 향이 입맛을 돋우는 팟카파오무쌉이 먼저 그 앞에 놓였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한 입을 먹는 순간, 혀 끝에 전해지는 얼얼하고 풍부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잠시 눈살을 찌푸릴 만큼 강렬했지만, 곧 미소를 짓게 하는 맛이었다.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자신을 만족시키는 매운맛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그는 언제나처럼 마지막 한 입에서도 방콕에서의 추억을 음미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후, 이제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그는 숙소 근처에 있는 아늑한 카페, 'The Office'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부드럽게 대화를 속삭이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만 또다시 상념에 잠겼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푸잉이를 만나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굴리며 그는 휴대폰을 꺼내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방콕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는 라오스 출신 푸싸오의 프로필에 눈길이 멈췄고, 망설임 없이 DM을 보냈다.

뭐해?
프롬퐁에서 점심 먹고 있어. 오빠도 올래?
난 이미 점심 먹었어. 카페라도 같이 가자.
응, 알았어. 와서 연락해.
약속이 잡힌 그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프롬퐁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푸싸오는 Emquartier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귀여운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모습에 기분이 살짝 들떴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둘은 푸싸오가 추천하는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5분이면 도착해"라는 푸싸오의 말과는 달리 시간이 더 걸렸지만, 즐거운 대화 속에서 길은 금세 지나갔다. 도착한 곳은 ‘Bottomless’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그는 이곳을 본 적이 있어서 순간 놀랐다. 이미 구글맵에 저장해둔 곳이었기 때문이다.
푸싸오는 타이티를 주문했고, 그는 라떼를 선택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지만, 어딘가 푸싸오의 태도는 조용하고 내성적으로 느껴졌다. 활발한 대화를 기대했던 그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조용히 생각에 잠긴 푸싸오를 바라보면서 그는 속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런 분위기로 과연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밝은 에너지를 가진 다른 푸잉이를 찾아야 할까? 내심 생겨버린 의문은 커피와 함께 천천히 넘어갔다.

커피를 다 마신 뒤, 두 사람은 다시 Emquartier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푸싸오는 갑자기 수다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활기찬 모습에 그는 묘한 설렘을 느꼈다.
'혹시... 이것도 그린라이트인가?'
"오빠, 나 집에 가서 좀 쉴게. 저녁에 같이 먹고 싶으면 연락해."
"저녁? 좋아, 알았어. 연락할게."
푸싸오는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그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일단 자신도 콘도로 발길을 돌렸다.
콘도에 도착해 잠시 멍하니 생각했다.
'푸싸오랑 다시 만날까?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찾아볼까?'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결국 망설임 끝에 다시 푸싸오와 저녁을 함께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지금 뭐 해? 이따 저녁 같이 먹을래?"
"좋아!"
"몇 시에 만날까?"
"7시?"
"좋아! 그럼 어디 갈까?"
"맘대로 정해!"
그는 Emsphere에 위치한 'Tribe Sky Beach Club'이 떠올라 그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응, 좋아!" 푸싸오가 선뜻 대답했지만 곧 이어 그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어? 잠깐만... 오빠, 나 여긴 못 가. 나 아직 19살이야."
"아... 그렇구나. 그럼 다른 곳으로 가자."
그들은 'Home Ekkamai'라는 콘도 근처 편안한 식당으로 장소를 바꿨다. 푸싸오는 그곳이라면 괜찮다며 저녁 약속을 확정지었다.
"좋아, 그럼 7시에 보자~!"
어제 만난 낙삭사의 소녀도 그렇고 오늘 라오스 출신의 푸싸오도 공교롭게 둘 다 2005년생, 19살이었다. 태국에서는 19살은 신분증 확인이 필요한 클럽이나 특정 장소에 입장이 불가능했다.
'이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군...'
약속 시간이 다가올 즈음, 그는 낮잠으로 잠시 피곤을 달래고 깨어난 후 깔끔하게 샤워를 마쳤다. 시간을 맞춰 옷을 차려입고 그녀와 약속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Home Ekkamai'는 라이브 밴드가 공연하는 공간이다. 식당 입구에 가드가 서 있었지만, 운 좋게도 신분증 검사는 따로 하지 않았다. 밴드 공연은 저녁 8시부터 시작된다고 해서, 그들은 먼저 음식을 주문하고 맥주 한 잔을 곁들여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잠시 후, 푸싸오가 화장실에 다녀온 뒤 그는 예상치 못한 행동에 약간 놀랐다. 그녀가 갑자기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오빠, 화장실 너무 춥더라."
그는 의아한 듯 푸싸오의 손을 잡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헉, 왜 이렇게 손이 차가워?"
푸싸오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흐흐, 오빠 손은 진짜 따뜻하네."

그의 머릿속에는 순간적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뭐지, 이거 혹시 그린라이트야?' 혼잣말처럼 문득 그런 생각을 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푸싸오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일로 와. 오빠가 따뜻하게 해줄게."
그는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로 푸싸오를 안심시켰다. 그의 말에 안도한 듯 그녀는 옆으로 기대며 조심스레 그의 품에 몸을 맡겼다. 그 순간, 푸싸오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고,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속에도 은근한 웃음이 피어났다.
'좋아,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다, 푸싸오!' 그는 속으로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이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당연시했던 그는 곧 다가올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