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의민족
태국

아직은 로맨스 – 방콕 이야기 4 [END]

벗쥬
2025.06.25 추천 0 조회수 52 댓글 5

 

어느덧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어요. 대충 8시쯤 눈을 떴던 것 같은데,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생각은 맑고 개운한 상태더라고요. 왠지 현명하고 든든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랄까? 그래서 친구와 둘 다 하품을 연발하며 하루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죠.
먼저, 각자 오늘 꼭 하고 싶은 걸 말해보기로 했어요. 저는 온천에 가보고 싶었고 친구는 함께 거리를 걸으며 점심 먹을 곳을 찾아보자고 했죠. 원래라면 호텔에서 식사를 해결할 생각이었는데, 굳이 고급스럽게 먹을 필요는 없으니 분위기 좋은 곳을 함께 찾아보자는 그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만 나왔습니다. 아, 정말 귀엽죠.
서둘러 구글로 온천을 검색했더니 마침 적당해 보이는 곳이 하나 보였어요. 위치는 통러였고, 커플 전용 프라이빗 온천에다 커플 마사지까지 포함된 패키지를 제공하는 곳이었죠. 이름부터 뭔가 일본 감성인데 묘하게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연락해봤더니 다행히 11시에 VIP 커플 룸 예약이 가능했어요. 바로 예약을 잡고 우리 계획도 훌륭히 마무리! 2시간 동안 힐링 일정을 소화하면 1시쯤 끝날 테니, 거리 좀 걷다가 점심 먹고 호텔로 돌아와 짐 정리를 하고 저녁을 먹은 뒤 공항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호텔에서 헤어지고 각자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친구가 무조건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네요. 그런 고마운 마음에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죠. 그러다가 저녁 메뉴를 논의하는 중, 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혹시 자기 친구랑 셋이서 함께 저녁 먹는 건 괜찮겠냐고요. 사실 원래 친구는 이날 저녁 약속이 이미 잡혀 있었는데, 저 때문에 취소했던 거 같더라고요. 이미 내 감정 상태가 한없이 넓어진 상태였던 터라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네 친구가 좋아하는 메뉴로 맞춰보자”라고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곧바로 다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렇게 결정된 저녁 식사가 오마카세라니... 심지어 그런 요망한(?) 선택이라니요. 물론 그날 제가 일식 먹고 싶다고 분명 말하긴 했어요. 그런데도 이런 고급스러운 선택은 살짝 예상을 벗어나더라고요. 어디인지 묻자, 본인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주변에 몇 군데 있는 걸 보니 꽤 유명한 레스토랑인 듯했습니다. 아무튼 세 명 예약을 부탁하자 "고맙다"며 뜨겁게 안아주네요. 아직 아침이라 어수선하게 입은 상태였는데... 그 순간 ‘현자’다운 상태가 바로 머릿속에서 날아갔습니다.
정신없이 10시까지 시간을 보내고 대충 옷만 주워 입은 뒤 온천으로 떠났어요. 어차피 온천에서 샤워할 계획이니까 대강 준비해도 괜찮겠죠? 택시에 몸을 싣고 졸리운 눈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곳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시키리 온센.

 

 

안내를 받은 뒤 유카타로 갈아입고 커플룸으로 이동했어. 시설이 정말 잘 마련되어 있더라고.

 

 

일본식 룰을 따르며 세 번쯤 탕에 들락날락했더니 몸이 한결 풀리는 듯하더라고요. 특히 위층에서 받았던 커플 마사지는 피로를 확 날려줬습니다. 그런데 탕 안에서 친구가 "으아~" 하고 신음소리를 내길래 장난으로 할머니 같다며 놀렸다가, 흠씬 한 대 맞았어요. 참고로 소리가 철썩! 하고 엄청 크게 나서, 때린 친구 본인이 더 놀라더군요. 
피곤함 때문인지 그 바닥에서 난 에너지는 이미 소진된 상태였어요. 이제야 제대로 침착한 정신을 찾은 것 같았죠. 예상했던 대로, 마사지가 끝나고 나니 벌써 1시쯤 됐습니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국수 가게를 찾아 들어갔어요. 
둘이 합쳐 180바트짜리 식사를 시켜 먹었는데, 도중에 앞 테이블에 앉아 계셨던 아저씨랑 자연스럽게 대화까지 나눴답니다. 분위기 좋고 음식을 잘 골랐다며 칭찬받았는데, 사실 이 가게를 고른 건 제 친구였어요. 친구는 약간 시큼한 맛이 나는 국수를 주문했고, 저는 평범한 걸로 시켜서 맛있게 한 끼 해결했죠.
밥을 먹고 나와 다시 동네를 돌며 걸었는데, 친구가 어느 미용실 간판을 보면서 유독 발걸음을 멈추는 거예요. 이유를 묻자 호텔에서 시간이 부족해 머리를 못 감았다며 투덜거리더군요. 그래, 바쁘면 그럴 수 있지 싶어서 "머리 좀 하고 와"라고 했죠. 그런데 친구는 이곳은 비싸다며 저를 끌고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몇 사람에게 묻고 나서 약 5분쯤 걸었을까요?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눈앞이 가라오케 거리로 변했어요. 대낮인데도 가게 앞에는 화려한 복장을 입은 여자들이 여럿 서 있었고요. 당황한 마음을 숨긴 채 따라가 보니, 술집 옆에 조그마한 헤어샵이 보였습니다. 뭔가 워킹걸들이 머리 손질을 하러 오는 그런 곳 같더라고요.
친구는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맡겼고, 저는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가라오케 거리의 시선들이 자꾸 느껴졌지만, 쿨한 척하며 모른 척했죠. 친구는 자른 건 아니고 그냥 머리 감기와 드라이 스타일링 정도로 끝냈던 것 같아요. 
헤어샵을 나온 뒤 근처 엠포리엄 백화점에 들러 잠시 구경하다가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길이 너무 막혀 이동하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됐더군요.
저녁 약속이 5시라 서둘러 짐을 싸고 체크아웃까지 끝낸 다음, 가방은 친구 차에 두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목적지는 타니야에 있는 곳이에요. 걸어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부족할까 싶어 바이크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문제는 바이크에 세 명이 타다 보니, 저는 중간에 끼어 간신히 자리 잡았는데... 와, 정말 무섭더라고요. 친구는 뒤에서 저보고 릴렉스 좀 하라며 계속 놀리 했습니다.
그렇게 겪은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식당의 이름은 바로 스시 세키지였습니다!

 

 

일본 요리 오마카세에 가니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세 가지 있었어요. 솔직히 생각보다는 저렴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 메뉴 한번 골라봐!" 하고 제안했더니, 친구의 친구는 가장 저렴한 메뉴를 선택했어요. 그때 이 친구, 양심을 아직 다 잃어버리진 않았구나 싶었죠.
오마카세에 가면 주어진 코스로 충분히 배가 부르지만, 사이드 메뉴 하나 더 주문한다고 하길래 "오마카세는 세트라서 먼저 먹고 생각해"라고 했죠. 가게 안에서 셰프 앞에서 '엿먹이세요'를 할 순 없잖아요, 특히 소 혀 같은 요리로 말이죠!
우리는 음식과 어울리는 술 추천 받아서 한 잔씩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특히나 성게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들더군요. 다들 먹은 뒤 흐뭇한 표정을 지었답니다. 친구의 친구와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요. 영어를 못하지만 일본어는 유창하게 했거든요.
그리고 그 친구 참 예뻤어요. 태국에서 만나본 여성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났어요. 고양이 같은 연예인 스타일에 슬림한 몸매, 나이는 20대 후반쯤?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는데, 제 표정을 보고 친구가 "내 친구 예쁘지?"라고 웃더라고요. 다 같이 사진도 찍었는데 그건 저만 소장하기로 했어요.
친구에게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니 일본인 스폰서가 있더라고요. 일본 남자들은 좋은 걸 참 빨리 알아차리는 것 같아요. 루프탑 바에서 찍은 사진을 자랑하길래, 아직 시간 괜찮으니까 다 같이 가볼래? 했는데 다들 정말 좋아했어요.
레스토랑을 나와 잠깐 걷는데 주변 남자들이 모두 쳐다보는 거예요. 가진 자의 느낌이 이런 거구나를 잠깐 느꼈죠. 
돌아오는 길엔 친구를 위해 돈키호테에도 들렀어요. 그 친구는 시라차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일본 고구마랑 몇 가지 물건을 사더라고요.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만큼 봉투에 담아야 하는데, 셋이서 거의 찢어지기 직전까지 몰아넣었어요. 지나가던 일본인이 박수 치며 응원해 주더군요. 하지만 계산대에서 봉투가 터져버렸는데 다들 웃으며 해결했답니다.
어쨌든 셋이 함께 툭툭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 루프탑에 올라갔다. 어제만큼 감흥은 덜했지만 친구가 좋아하던 와인을 시키고 한 잔씩 나누며 사진도 찍고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 꽤 좋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 보니 공항으로 갈 시간이 되어 친구의 친구를 호텔 로비에서 배웅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친구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 차 안에서 일부러 공정거래비용을 온라인 송금으로 보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어떤 연결고리를 남기고 싶었던 걸까?
공항으로 가는 길,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그녀가 내 손을 조심스레 잡더니 물었다. "또 올 거야?" 솔직하게 대답했다. 너를 만나러 다시 오고 싶긴 하지만 언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미국에 살면서 태국은 너무 먼 곳이라 자주 오기는 힘드니까. 사실 이번에도 두 달 만에 다시 온 셈이었지만.
그 순간, 전날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일본 남자들이 (아마 한국 남자들도 비슷할 텐데) 자신의 일처럼 밤에 일하는 여자를 만나면 처음부터 함께할 미래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곤 한단다. 하지만 결국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예전에 그녀를 배신했던 남자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상했던 마음이 되살아났다. 다른 여자를 데려와 셋이 함께 살자고 했다고, 그러다 싸대기를 날리고 헤어졌다는 이야기까지… 
스폰서를 받아본 적도 있었지만, 결국 그녀의 결론은 하나였다. 어떻게든 혼자 성공해서 어머니와 조카 둘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자신의 목표라고. 그녀는 결혼이나 아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 이제는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듯했다. 그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세탕 일을 뛰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나에게는 정말 멋져 보였다.
사실 나도 여행 중간쯤부터 고민이 생겼다. 이 친구와 어떻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 말을 꺼내진 못했다.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말했다. 나와 함께하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며칠 동안 너무 행복했다고. 만약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You're my trouble now"라며 웃었다.
그 순간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미래에 대해 약속할 수도 없고, 그녀 역시 그런 약속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단지 좋다고 말해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대로 떠나면 서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이가 될 텐데. 결국, 이런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싶었다. 이 이상 관계를 발전시키면 언젠가는 마음만 더 아플 게 뻔히 보였으니까.
결국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고 "I'll miss you a lot" 단 한 마디를 남겼다. 서로 눈을 맞추고 웃으며 그렇게 공항에서 이별했다.
이번 여행은 5박 6일 동안 한 사람만을 만났던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행복했고 또 너무나 슬픈 여행이었다.

댓글 5


오호 오마가세 ㄷㄷㄷ

악 한구멍만 ㄷㄷㄷ

분위기 좋은곳만 다니시네 ㄷㄷㄷ

이런데가 잇나

오 여기 한번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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