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의민족
태국

방콕 초보 여행자의 첫 여정! (4일차)

아사가아
2025.05.17 추천 0 조회수 187 댓글 6

 

오늘 저녁은 그녀를 만나는 날이었다. 그녀와는 약 2주 정도 인스타그램 DM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이였다. 사실, 서로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겉치레 같은 가벼운 대화들뿐이었다. 선을 한 번 보자는 의례적인 제안 정도였달까. 그래서 그녀가 약속에 나오는 것 자체가 정말 의외였다.
혹시 몰라 A 브로와 그의 파트너에게 '레보 스카우터'를 요청했었다. 그들로부터 ‘레보 아님’이라는 결론을 받게 되었고 나서야 최종 연락을 진행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웃음만 나온다.)
우리는 터미널 21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그녀가 입고 오겠다고 한 검은 바지와 흰 블라우스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눈앞에 웬 뚱뚱한 사람이 검은 바지와 흰 블라우스를 입고 서 있었다. 잠깐 멈칫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영상통화를 했을 땐 분명 아니었는데? 혹시 이게 AI 딥페이크 사기? 아니면 나 지금 어딘가에 셋업 당한 건가? 경찰서가 어디 있는지 미리 알아봐야 하나?
이런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 "너 이쪽에 있어?"  
돼지가 그녀가 아니었음에 속으로 안도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그녀와 드디어 만났다.  
그녀: "너였구나? 봤는데 몰라봤어. 키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네. 그리고 왜 이렇게 어려 보이는 거야?"  
나: "너는 영상통화 때보다 훨씬 말랐잖아. 진짜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아. 자, 밥 먹으러 가자."  
그녀와 나는 DM으로 나눴던 대화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예상 밖으로 이야기가 잘 통해 분위기가 좋았다. 수다를 떨며 인터넷에서 잔뜩 조사한 미슐랭 1스타 식당, ‘쁘라이라야’로 향했다.

 

 

거기서 가장 맛있다는 뿌빳퐁커리와 동파육을 주문했는데...

 

 

와, 이건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맛이 없었다. 어떻게 미슐랭 1스타를 받았는지 의문이었다. 그녀도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묘한 표정을 던졌고, 결국 배만 겨우 채우다 싶어 자리를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명확했다. 이곳은 절대 추천할 수 없는 곳이다. 식당 종업원이 "포장해드릴까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음식이 많이 남았으니 말 다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곳에서 뭐 좀 더 먹을까?"  
그녀의 답은 "네가 정해."  
살짝 맥이 빠졌다. 'up to you'라는 말이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싫은 표현이 되어버렸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려 나름의 제안을 해봤다. "칵테일이라도 한잔하러 가볼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 하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를 데리고 솔라리아 호텔 루프탑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루프탑은 텅 비어 있었다. 적당히 한적한 자리로 이동해 앉고는 칵테일을 한 모금씩 홀짝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솔직히 너 안 나올 줄 알았어."  
그녀는 바로 반문했다. "왜? 약속은 잘 지키는 편인데."  
"우리가 그동안 너무 딱딱한 이야기만 했잖아. 그래서 그냥 안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녀는 잠시 날 바라보다가 말했다. "근데 넌 메신저로 말할 때랑도 많이 다르다."  
"내가? 난 되게 신사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는데," 하고 변명을 시도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단호히 말했다. "아니야. 네 글에는 거만함이 묻어났어. 정말 재수 없었어."  

 

 

조용히 소소한 근황을 나누며 칵테일을 홀짝이던 시간. 생각보다 도수가 높은 칵테일 두 잔씩이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서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마하사라캄에서 공장 일을 하다가 이제 막 일을 바꿔, 두세 달 전에 워킹 가이드로 전환한 초보였다. 우리 대화 중 흘러나온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처음에 왜 거만해 보였는지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에 따르면 한국 남자들이 DM으로 가볍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진지하지도 않으면서 시도해본다는 식의 행동이 꽤 자주 있다고 했다. 그 결과, 한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 그런 이미지의 여파가 나에게도 닿은 것 같았다. 우리 형제들이여, 이런 행동은 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녀가 하는 일은 고객과 여행에 동행하지만, 개인적인 선은 확실히 지키는 '퍼스널 가이드'였다. 고객이 요청하는 시간에 만나 함께 저녁을 보내거나 데이트 후 숙소에서 헤어지는 방식이라고 했다. 가격도 더 저렴하다고 말하니, 어떤 느낌인지 이해는 갔다. (에코걸 같은 것과는 다른 느낌인 걸까?)
밤이 깊어가고 나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나 이제 숙소로 가려는데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으면 같이 가자. 강요는 아니야." 그녀는 주저 없이 "그래."라고 답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대화가 무르익은 탓인지, 우리는 어느새 연인처럼 손을 잡고 있었다. 깔깔대며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도보로 10분 거리도 순식간에 사라졌고, 우리는 초고속으로 호텔에 도착했다. 냉장고에 미리 사둔 맥주를 꺼내 함께 마시며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어를 못하는 그녀와 태국어를 못하는 나는 말을 잇지 못할 때 번역기에 의존해야 했지만, 오히려 이 과정이 답답하기보다는 신선하고 묘한 재미를 더해줬다.
"이제 정말 집에 가야 하지 않겠어?" 내가 물었다.
"내가 갔으면 좋겠어?" 그녀가 되물었다.
"아쉽긴 하지만… 게다가 난 고객 아닌가? 고객과는 그런 관계는 갖지 않는다며."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고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달라. 넌 그냥 고객이 아니야. 그리고 난 너 좋아."
술의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신기하게 잘 맞아서였을까? 정답을 알 수 없었지만, 그날 밤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뜨겁고 긴 밤을 보내며 아침햇살이 떠오를 때쯤엔 둘 다 지친 듯 잠이 들었고, 오후가 돼서야 다시 깨어났다. 깨어난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낯선 사람이 아닌 특별한 연인이 된 기분이었다.
첫 데이트로 함께 아이콘시암 쇼핑몰로 향했다. 서로의 취향과 식성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며 더 가까워졌다. 그녀도 처음엔 "Up to you"라고 무심하게 넘기던 답변 대신 자신의 취향을 밝히기 시작했다. 쑥시암에서 악어나 돼지 뼈들을 구경하며 걸음을 맞추었다.

 

 

여벌 옷을 챙겨오지 않았던 그녀를 위해 편한 옷과 커플티를 사며 자연스레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호텔에 도착해선 마치 오랜만에 만난 연인처럼 뜨겁게 서로를 탐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귀국일 아침 해가 밝아왔다.

댓글 6


푸잉이 마인드 좋네요

이런 푸잉을 만나야 하는데

무인 가면 이런 푸잉 있나

무인 가면 되나

와 역시 라인 따는게 제일 중요하네요

야경. 좋네요

자유게시판

전체 필리핀 태국 베트남 그외
필리핀 마닐라에서..
+1
즛토다이스키
4시간전 조회 7
베트남 로컬 착석 짬진 갓성비네요
+6
응디머니
2025.05.17 조회 69
베트남 하노이 경유 1일차
+6
매니퍼키아우
2025.05.17 조회 42
베트남 하노이 여행기 [1편]
+13
어니구미
2025.05.15 조회 153
베트남 호치민 District K 후기
+8
먼제
2025.05.15 조회 103
1 2 3 4 5
/upload/0d9e17710414401f8aa444f27afb1803.we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