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고 기대하던 파타야 - 로맴매편
안녕, 브로들.
비행기값 10만 원 아끼겠다고 날짜를 조정해서 갔다 온 게 벌써 며칠째 후회되네.
아, 진짜 일하기 싫다.
여유롭게 시간 보내는 브로들 보면 가끔 너무 부러워. 그 자유로움이 말이지.
오늘은 지난 며칠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해.
혹시 내 후기를 본 브로들이라면 알겠지만, 이번 얘기는 파타야 도착 후 4일 차의 이야기야.
소이혹에서 정말 예쁜 뿌잉을 만났었거든.
처음엔 그냥 "어쩜 이렇게 예쁘지?" 싶었다가, 나중에 사진을 보다 깨달았어.
아... 내가 한때 정말 좋아했지만 실패했던 사랑과 외모가 비슷해서 그렇게 끌렸던 거구나.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이 이런 얼굴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는 계기가 됐지.
그 친구를 만난 곳은 소이혹에 있는 '달달한 바'라는 곳이었어. 이젠 그녀를 편의상 M이라고 부를게.
M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봤던 동남아 쪽 사람 중 가장 영어를 잘했어.
물론 완전 네이티브 수준은 아니지만, 딱딱한 주입식 영어교육 받은 나보다는 훨씬 유창했고 대화에 전혀 문제 없었거든.
그동안 필요를 채우기 위한 붐붐은 몇 번 했고, M이랑은 뭔가 교감이 더 담긴 붐붐이 가능할 것 같아 함께 나왔어.
지인이 뿌잉 픽하러 다른 바도 들러야 해서 함께 들어갔는데, 거기서 이런 대화가 오갔지.
"오빠, 쟤 어떨 것 같아? 별론 것 같은데?"
"응, 나도 별로인 듯."
그렇게 간단한 얘기들을 하면서 결국 생각도 못 했던 삼겹살에 소주까지 하게 되었어.
지인의 뿌잉이가 갑자기 피곤하다고 투덜대서 지인을 먼저 보내고 난 M이랑 좀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
M이 이런 말을 하더라.
"오빠 친구 파트너, 너무 예쁜 척하는 거 같아."
"응, 나도 그렇게 보였어. 아까 기름 튀어서 아프다고 눈물 글썽거리더니 떡볶이는 또 잘 먹더라고."
"맞아! 진짜 웃겨ㅋㅋㅋㅋㅋ"
M이랑 얘기를 하면 할수록 너무 재미있고 잘 통했어.
"내일 출근 몇 시야?"
"나, 내일 홀리데이야."
"그럼 데이트할래?"
"오빠, 남자가 여자한테 데이트 신청할 땐 어떻게 해야 돼?"
"내일 저랑 데이트해 주실래요? 저랑 함께해 주세요. 당신과 있고 싶어요."
"좋아요ㅋㅋㅋㅋㅋ"
귀엽더라니까. 진짜 귀여워서 큰일이었다.
맘을 너무 뺏기면 안 되는데, 여긴 파타야잖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곳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야.
결국 같이 호텔로 갔지. 욕조가 있는 호텔이었는데 M이 욕조에 꼭 들어가 보고 싶다길래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갔어.
같이 욕조에 들어가서 M이 좋아하는 한국 노래를 들으며 맥주도 한 잔 더 마셨던 그 시간들이 참 좋았어. 단순히 마냥 술만 마시면서 붐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여유롭고 색다르게 노는 게 훨씬 재미있었지.
술을 많이 마셔서 붐붐은 포기하려 했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M.
"괜찮아?"라는 질문에 "응, 괜찮아"라고 답하면서 서로를 확인했던 그 순간.
결국 마지막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꽉 찬 느낌이라 행복했어.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
다음 날은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서 같이 해장을 하며 기운을 차렸지. 원래 영화 보기로 했지만 시간이 어정쩡해서 그냥 센트럴을 좀 둘러봤어. 그런데 갑자기 M이 술기운이 돈다고 해서 호텔에 와서 잠깐 눈을 붙였어.
"근데 나 내일 아침 비행기라 새벽 5시에 체크아웃해야 해."
"괜찮아, 오빠. 안 자면 되잖아."
"그래, 그럼 밥 먼저 먹으러 갈까?"
"어디로 갈 건데?"
"내 친구가 새벽에 만나고 사라지려고 스카이갤러리에 간다고 하더라. 거기 구경 가자."
"파파라치라도 하게?"
그렇게 둘이서 파파라치처럼 오붓하게 놀려고 했는데, 우리가 먼저 도착해버렸고 심지어 자리가 많은데도 굳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버리는 지인 일행. 정말 눈치껏 좀 행동하지.
결국 같이 밥 먹고 나서 지인들을 보낸 뒤, M이 일하는 달달한 분위기의 바에 맥주를 마시러 갔어.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M을 챙겨주고 싶어서 엘디도 좀 챙겨주고, M의 친구랑 바 매니저까지 술 한 잔씩 돌렸지. 그러다 보니 매니저가 나한테 데킬라 샷 하나를 더 챙겨주더라고. 여러모로 기분 좋은 시간이었어.
바 매출이 조금 더 오를 것 같아서, M의 멋진 모습도 돋보이고 기세도 세워주고 싶어서 함께했던 순간들이 참 좋았던 것 같아.

호텔로 돌아와 도란도란 행복한 시간을 나누고,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아, 이럴 줄 알았어. 발이 떨어지지 않네. 하지만 어쩌겠어. 돈이 있어야 다시 놀러 올 수 있지.
"오빠, 한국 도착하면 꼭 연락해야 해. 진짜로!"
"응, 당연하지. 꼭 연락할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복귀했다. 며칠 동안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아... 이러다 진짜 로맨스에 빠지는 거 아닐까? 끝이 어떻게 될지는 어렴풋이 예감했지만, 뭐 얼마나 가겠어라는 생각으로 현재를 그냥 즐기고 있었다.
지난여름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연애는 이제 끝이다, 혼자 살겠다'라는 결심도 m 덕분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묻어두었던 연애 감정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오빠, 나 오빠 진짜 사랑하는 것 같아. 나 오빠 여자친구가 되면 직업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어."
"넌 이미 내 여자친구 아니었어? 넌 그렇게 생각 안 했나 보네?"
"정말? 나 여자친구야?"
"당연하지!"
에휴... 나란 인간. 또 이렇게 감정에 휘말리고 만다. 어차피 적당히 연락만 이어 가면 내년에 쏭크란 축제 때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오빠, 아 미슈."
"아 미슈 투."
뻔한 대화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일정을 얘기하던 중, 2월에 m이 일주일 정도 휴가를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 마침 나도 명절에 집에 갈 계획은 없는데 이참에 초대해볼까?
"한국 와볼래?"
"비행기표가 비싸서 못 가."
"걱정하지 마, 내가 티켓 구해줄게."
"정말? 그럼 나 진짜 오리지널 한국 음식 먹어볼 수 있는 거야?"
m과 함께라면 한국 여행도 분명 즐거울 거라 믿었고, 이 정도 비행기값은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며칠 후, m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다. 티가 나는 거짓말들이 점점 늘어나고,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두어 번 정도 돈 문제로 불편해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방콕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5천 바트나 써버렸다며 투덜대던 m에게 "술 마시면서 팁을 얼마나 뿌린 거야?"라고 살짝 타박했던 적도 있었다. 아마 그때 m은 '이 사람한테는 더 이상 나올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자존심이 좀 상했다. 예전 첫 연애 이후로는 동남아권에서 내가 먼저 거절당하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상처받은 자존심이 점차 애틋함으로 변해 갔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 종일 카톡을 기다리며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렇게 불안감 속에서 m과 다투게 된 날, 문득 스스로를 돌아봤다. 이쯤에서 관계를 끊고 정리하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여기까지 오다 보니, 스스로 느꼈지. 이대로 가다간 정말 비행기표를 끊고, 또 한동안 헤매게 되겠구나 싶었어.
송년회에서 과음한 다음 날,
"굿모닝 오빠, 괜찮아?"
"아니, 너무 힘들어..."
그 뒤로 한참 지나 늦은 밤에야 온 답장.
"오빠 미안해, 오늘 너무 바빴어."
그때 깨달았지, 이제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걸.
"너와 나의 관계는 여기서 끝인 것 같아. 나는 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상황으론 어려운 것 같아."
"오빠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 싫어. 하지만 난 오빠를 사랑해. 일 때문에 그런 거야. 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해서... 내가 일을 그만두면 오빠가 나를 서포트해줄 수 있는 거야?"
"솔직히 서포트해줄 수는 있겠지만, 안 할래. 나는 너희 상황을 조금은 알아. 내가 왜 태국어를 조금 아는지 네가 모를 거야.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거든. 이제 이만 멈추자. 더 이상은 못하겠어."
그렇게 우린 끝났어.
와... 참 허무했지.
너무 빨리 끝나버린 거야.
그래도 4월까지는, 최소한 쏭크란까지는 이어질 줄 알았는데...
그때쯤이라면 뭔가 알콩달콩한 장면들을 기대했는데 말이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돈을 더 써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웃프네.
뭔가 씁쓸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어.
특히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점과, 오랜만에 살아난 연애 감정이 어딘지 아련하게 남아 있어서 그런가 봐.
그래도 얻은 게 없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는 게 큰 수확이랄까? 그래서 한 번 더 연애를 시작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쏭크란은...? 음... 여자친구를 만들고 같이 간다고 해도 결국엔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고.
글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여기까지가 이번 내 로맨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후기야.
역시 파타야라는 곳은 짧은 시간이지만 강렬한 기억을 선물하는 곳이다 싶어.
연차 충전해서 다시 떠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싶네.
여행 중인 형제들, 너희 재밌는 후기 좀 공유해줘! 대리만족이라도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