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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평범한 로맴매 후기 in 하노이 - 3

로맴매
2024.10.16 추천 0 조회수 2334 댓글 21

 

 

"테이블에 앉아도 될까요?"라는 질문이 던져지자, 

여덟 개의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미묘한 기류 속에서 네 쌍의 눈이 마주쳤고,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형들도 한 번쯤은 정말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해본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형들은 코웃음을 치며 "지랄하고 있네"라고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그 찰나의 순간은 내게 긴장과 떨림의 집합체였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던진 단순한 접근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 100% 진심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좀 미적지근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묘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와 힐끗힐끗 보며 웃으면서 수군거리는 나머지 세 명. 

어색하게 내민 잔 끝에 머쓱하게 손가락만 비비적거렸다.
순간적으로 '아... 까였구나' 생각하며 민망함을 숨긴 채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거짓말처럼 그녀가 싱긋 웃으며 빈잔을 부딪혀왔다.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Tôi không thể uống tốt." 물론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아는 베트남어라곤 신짜오랑 붐붐뿐이었다. 

외국어라곤 영어 조금, 일본어 조금, 중국어 조금밖에 몰랐다.

 사실 그걸로도 살면서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었던 경험은 없었는데, 

세상은 넓고 내 세상은 좁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아무튼 그렇게 자괴감 아닌 자괴감에 잠시 젖었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마디 던져봤다. 

"Can you speak English?"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양손을 교차해 X자를 만들고 고개를 선선히 저었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예뻐 보였는지 모르겠다. 

가슴팍이 뻐근해지는 느낌과 함께 그냥 꼭 끌어안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이 여자와 어떻게든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꼭 성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남은 여행 기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내 망상을 깨뜨린 건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또 다른 꽁가이였다.

 

 "You ggorea? She can't English." 

"Oh, yes. You can speak?"

 "a little bit."


음... 근데 이 친구가 영어를 썩 잘하는 게 아니기도 했지만 베트남 영어 발음... 참 알아듣기 힘들었다.

 뭐, 아무튼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 통하는 게 어디인가?
첫사랑을 닮은 그녀는 내가 영어 꽁가이와 대화하는 사이 나머지 친구 두 명과 아까 하던 세팅을 다시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친구인 영어 꽁가이와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잠시 동안 대화를 나눴다.
아, 지칭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네 명을 소개하자면...

 

1. 영어를 말하는 꿈속의 소녀
2. 분홍 드레스를 입은 몽환적인 소녀
3.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
4. 하얀 옷을 입은 순수한 소녀

 

오늘은 분홍꽁가이의 생일을 맞아 친구들이 모여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 남자 없이 여자들끼리 즐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첫사랑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You like she?"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아 그녀에게로 이끌었다.
잠시 후, 그녀는 웃으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내밀었고, 

나는 얼떨결에 내 손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와 친구들은 크게 웃었고, 

나도 어이가 없어 함께 웃었다. 

"kkkkkkk your phone kkkkk"라는 말이 들려왔고, 

나는 술에 취했는지 아니면 그녀에게 홀렸는지 혼란스러웠다.
첫사랑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지만, 

그녀는 무언가 찾다가 난처한 표정으로 돌려주었다.

 영어꽁가이가 다가와 "You have no zalo?"라고 물었지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그것이 메신저 앱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다운로드할 수 없었다.
카카오톡이나 라인을 사용하냐고 물어봤지만 역시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아 저장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내 테이블로 돌아오니 분위기는 30분 전과 달랐다. 

더 이상 아름다운 꽁가이도, 

신나는 음악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감증에 걸린 듯 아무것도 보고 듣고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멀리 보이는 그녀의 테이블만 바라볼 뿐이었다.
더 이상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클럽을 나와 택시에 올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다. 

유려한 어깨선을 따라 흐르던 긴 생머리와 오똑한 콧날 옆으로 큰 눈망울이 애수를 자극했다. 

한손에 가득 잡힐 듯 넘치는 볼륨감 있는 모습까지...

 

 

그녀의 미소는 살며시 지어진 채,

 옴폭한 보조개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번호를 찍어준 뒤 메시지를 보내라는 듯, 

양손으로 핸드폰 자판을 누르는 시늉을 했다. 

길고 하얀 손을 천천히 흔들며 웃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했다.
그 미소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호텔로 얌전히 돌아가는 내가 한심하고 못나 보였다. 

형들, 그거 알지? 정말 좋아하면 오히려 자신 있게 다가가기 힘든 거 말이야.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가볍게 생각하는 이성에게는 장난도 잘 치고 쉽게 말을 던질 수 있었지만, 

진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가볍고 위트 있게 접근하는 게 낫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진지해지고 신중해졌다.
비웃어도 괜찮다. 

하지만 나는 한눈에 첫사랑을 닮은 그녀에게 반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바보처럼 호텔로 혼자 돌아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그녀의 번호를 등록한 뒤 번역기를 켜서 베트남어로 첫 메시지를 보냈다.

 

 'Xin chào. Tôi là người Hàn Quốc trước đây. Tôi mong muốn được nghe từ bạn.'

 (안녕하세요. 아까 전의 한국인입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물론 저 말이 맞는지는 몰랐다. 

그냥 번역기에 넣고 그대로 돌려서 보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녀의 답장을 기다리다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까지 그녀의 메시지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댓글 21


아 뭔가 단단히 꼽히신듯
그랫을지도요 ㅋㅋㅋ

음 홀리거 아님? ㄷㄷㄷ

설마 상사병? ㅋㅋㅋ
그런게 아님 ㅠ.ㅠ

완전 스타일이엿나 보네요
아 슬프네요 ㅋㅋㅋ

그래도 용기있는 도전 멋있슴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역시 직진이죠
후진은 없습니다

용기 미쳤습니다
끝은 과연 ㄷㄷㄷ

좋은 결말을 기대하겠습니다!
아 저도 그랬으면 ㅠ.ㅠ

과연 결과는

니가가라하와이
용자였네요

와 필력이 ㅎㄷㄷ

와 아쉬움 꿈나라로 ㄷㄷㄷ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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