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혼란스럽고 유쾌한 방아다 3
안녕! 브로들!
오늘은 여행 3일 차 일정을 적어야 하는데, 사실 지금 공항이야! 기억을 더듬어가며 써볼게.
오늘은 어제 가보지 못했던 왕궁과 카오산 로드를 둘러보기로 했어. 그런데 나랑 함께 왕궁과 카오산 로드를 구경시켜주겠다는 34살 태국 푸잉 누나가 있었지! 이 누나는 어제도 나랑 조드페어 야시장을 다녀온 친구야. 오늘 아침에도 나를 픽업하러 일찍 오더라고. 하지만 나는 너무 피곤해서 늦게 일어났고, 그래서인지 푸잉 누나가 살짝 눈치를 주는 것 같았어.
눈치 보며 준비한 후, 호텔 근처인 시암 파라곤까지 둘이 걸어갔어. 이 친구는 중국인과 태국인의 혼혈인데, 키도 크고 날씬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유쾌한 성격이라 꽤 괜찮은 동행자였지. 어제 저녁부터 사실상 내 가이드를 맡아주고 있는 셈이지 뭐. 앞으로 며칠간 계속 만나게 될 거야. 큰 사건은 없는데, 뭐 나쁘진 않았어.
그렇게 시암 파라곤에 도착해 함께 밥을 먹고 나서는, 방콕에 왔으니 여행지답게 왕궁을 가보자고 했어. 근데 진짜 너무 덥더라. 더위 때문에 옷에 소금이 낄 정도로 땀이 흐르고 있었거든. 왕궁 앞까지 갔는데, 더워서 그런지 굳이 안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더라. 결국 푸잉 누나랑 카페에 앉아 시원한 음료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어. 영어를 잘 못하는 나도 간단하게나마 대화를 이어갔지. 푸잉 누나는 영어를 꽤 잘하더라고.
그 후에는 형들이 계속 노래를 부르던 무카타라는 메뉴가 궁금해져서 저녁으로 무카타를 먹으러 갔어. 참, 먹다가 이상한 디저트도 조금 맛봤어. 이제 설렘 가득한 곳으로 탐방을 시작해야 할 차례지! 그 목적지는 바로 카오산 로드야.
처음 카오산 로드에 도착했는데, 뭐랄까... 좁은 골목뿐이더라고? 사람은 분명 많았는데 소문처럼 클럽이나 신나는 장소는 잘 보이지 않고 소규모 펍들만 줄지어 있었어. 이게 내가 생각하던 그런 분위기가 맞나 싶었지. 그냥 연결된 길 따라 무작정 걸었어. 근데 날씨 덕분에 나도 지치고 옆에 있던 푸잉 누나도 힘들어하는 게 보였어. 끝까지 걸으니 도로를 넘어가는 이상한 구조도 나오고 좀 난감했지.
결국 어느 태국 노래를 부르는 펍에 들어가 음료를 마셨는데도 뭔가 아닌 것 같았어. 시간도 아까워지고, 차라리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러다가 푸잉 누나 팀이 날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우물쭈물했어. ‘잘못됐다 싶으면 도망치자!’라는 심정으로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고 한쪽 구석으로 갔지. 그런데! 갑자기 모르는 작은 샛길을 발견했어. 뭔가 느낌이 다르더라...
내가 걸었던 길은 좁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같은 느낌이었는데, 바로 옆길은 깔끔하게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차림부터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더라. '여기가 바로 카오산이구나' 싶었지. 순간 내가 길가에서 민망하게도, 사람 살결이 아닌 옷 위를 건드리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푸잉(태국 여성)을 데리고 슬쩍 구경을 한번 했지. 그런데 시간이 이른 탓인지 주변 펍들에 사람도 많지 않고, 푸잉도 소음을 싫어해서 그냥 눈으로 담고 사진 몇 장 찍은 뒤 바로 호텔로 돌아왔어. 가이드를 해주는 누나 같은 푸잉이 차로 데려다줬는데, 내리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지더라.
아직 시간은 11시. 태국의 밤이 막 열릴 때였지.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이번엔 나나플라자로 몸을 던졌어. 겸사겸사 어제 나한테 뜬금없는 세정제와 끈 같은 걸 두고 간 친구에게 돌려주러 갔거든. 그런데 어림도 없지. 그런 걸로 날 묶어둔다니, 어불성설이지! 어제 친구를 봤던 장소에 가서 사람들에게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며 물건 주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지. 그리고 슬쩍 거리 풍경을 스캔하며 테메(유명 클럽)로 이동했어.
사실 나 같은 샤이보이에겐 테메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가 쉽지 않더라.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고, 오늘따라 일본 여성 손님은 거의 없고 태국 여성들만 많았어. 솔직히 나는 외국 클럽에서도 레보(영업 여성)를 좀 무서워하는 편이라 제대로 말도 못 걸고 식은땀만 흘렸지. 그래서 마음을 돌리고 다음 장소인 소이카우보이로 이동했어. 왜냐면 어제 3시에 끝난다고 하면서 나더러 기다리라던 한국어를 잘하는 푸잉과 여전히 연락을 하고 있었거든. 그 푸잉은 내 도시락 같은 존재랄까? 나름 잘 챙기며 그녀를 만날 생각에 기대하고 있었어.
그런데 막상 만나러 가보니 그녀가 이미 다른 한국인이 바패인(바에서 여성을 데려가기 위해 지불하는 금액)을 내고 데리고 나갔더라고. 완전 낭패였지. 도시락을 빼앗긴 기분이랄까? 좌절한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테메로 되돌아가 이번만큼은 용기 내서 말 한마디라도 걸어보자 다짐했어. 그런데 또 그 시간이 '잔반 처리 타임'이라 그런지 별로 마땅한 사람이 없더라. 한참 기운 빠져 맥주 몇 잔 마신 뒤, 이제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옆에 있던 한국 남자한테 말을 걸었어. 여자한테는 말도 못 걸면서 남자한테는 쉽게 말을 거는 내가 웃기긴 하더라.
그 한국 남자는 자기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여기서 돈 쓰는 것보다 차라리 클럽 가서 직접 사람을 만나 보는 게 낫다는 조언을 해줬어. 그런 와중에, 아까 바패인을 받고 나갔던 한국어 가능한 푸잉이 다시 연락을 해서는 '3시에 내가 보고 싶다'고 하더라. 우린 틈틈이 연락을 이어가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랑 나갔는데 어떻게 계속 연락이 가능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무튼 그녀가 또 도시락으로 돌아온 격이지.
테메에서 더 시간을 보내긴 싫어서 호텔에 돌아와 그녀를 기다렸어. 밤 3시 반 즈음 그녀가 오더라. 문제는 다음 날 아침 9시에 나를 데리고 파타야를 가기로 한 가이드 역할의 푸잉과 약속이 있었거든.
잠을 포기한 채 방으로 온 한국어 푸잉(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보드카를 마셨다. 그녀는 바 패키지를 받고 가이드를 주로 한다고 말했다. 오늘도 가이드를 하고 온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한국 남자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2차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고 했고, 노출이 적은 옷만 입는다고도 했다. 실제로 보니 옷차림이 단정하긴 한데 조금은 무겁게 느껴졌어. 살색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거지.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보드카에 취해갔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여러 상처를 받은 데다, 언젠가 한국 관련 가이드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큰 꿈도 있다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런데 2차는 안 간다고 딱 잘라 말하니, 무작정 뭔가를 제안하기도 애매하고 내키지 않더라. 어차피 내가 돈을 낸 것도 아니고, 오늘은 그냥 서로 기대어 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침대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잠만 잤다. 매일 두 번씩 일을 해오다가 오늘은 좀 쉬기로 결심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달까. 그렇게 그녀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여행의 세 번째 날이다. 공항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틈나는 대로 모든 걸 적어보려고 한다. 비행기를 한 번 놓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엔 꽤 일찍 도착했다. 이런저런 걸 많이 쓴 것 같은데 두서없이 적은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 줘, 한동안 댓글 읽으면서 기다릴게!
참, 도시락인 줄 알고 열었는데 병아리가 들어 있어서 차마 먹지 못했던 하루였어. 그런 모습이 너무 측은해 보이더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