ㅌㄸㅇㅈ의 맨붕여행 4편
안녕, 브로.
낮 데이트를 마치고 지금은 허름한 호텔방에 누워있는 상태야. 재밌는 경험들이 많아서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어졌어. 오늘 놀라웠던 건, 약속 시간보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연락을 준 그녀의 태도였어. 푸잉(현지 여성)이 그렇다니 정말 신기했지. 운전을 해서 온 거라 해도, 보통은 다들 늦는 경우가 많잖아? 이건 뭐랄까, 인간미와 매너 모두 호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행동이었어.
처음 봤을 때는 코스튬 차림이라 꽤 충격(?)이었는데, 오늘은 가벼운 화장에 깔끔한 옷차림으로 나타나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더라. 순간 20년 전, 내가 27살일 때 만났던 모델 지망생 친구가 떠올랐어. (그땐 나도 기럭지로 차였었지. 이젠 추억으로 웃어넘길 수 있다니 다행이야.)
우리는 외곽에 있는 브런치 카페로 향했지.

분위기도 참 좋았고, 서로 어색하지만 조금씩 칭찬을 주고받다 보니 낯선 긴장감도 한결 풀렸어. 어제는 나누지 못했던 질문과 대화들을 이어갔고, 덤으로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왜 이렇게 즐겁던지. 부드러운 바람과 화창한 날씨, 맛있는 음식까지 더해지니 정말 연애하는 기분이 들더라구.

심리 상담이 마음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처음 본 사람이 손을 잡아줄 때 느껴지는 위로가 생각 이상으로 크더라구. 물론 내 속마음 한편에서는 "그래봤자 얼마나 오래 볼 사람이겠어?"라며 선을 긋고 있는 내가 있었지만 말이야. "기분이나 상황에 휩쓸리지 말자"는 다짐 같은 걸 계속 했던 것 같아.
그녀와 발 마사지를 받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성적인 취향이라든지 어느 정도까지 경험해봤는지 먼저 물어보더라구. 솔직히 난 순수하게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되는 데이트를 상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녀는 단단히 준비된 느낌이라 이 노인네를 흔들어 놓으려는 건가 싶었어.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론 당황스럽기도 했네.
아무튼 그녀가 오늘 저녁엔 또 다른 카니발 공연에 가야 한다고 해서,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어. 원래 공연도 궁금한데다 잠깐 얼굴이라도 보기로 한 거야. 사실 룩본(다른 퍼포머)과 같이 공연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차마 물어보진 못했어. 오늘이 마침 술 마실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해서 아마 밤 11시부터 1시간 정도는 제대로 달릴 예정이야. 내일 붓다데이라고 해서 술을 못 마신다던데, 그 전까지 여기 분위기를 최대한 즐겨야지. 카니발 풍경도 기회 되면 공유할게!
Ps. 이런 한국과는 다른 비일상을 나 자신만의 일기처럼 남기고 있어. 이 커뮤니티가 오래오래 번영하길 바라고, 나중에 내가 80살이 됐을 때도 읽으면서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